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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동물 시리즈 1] 큰바다쇠오리, 사람의 손에 사라진 북대서양의 큰 바닷새

📑 목차

    멸종동물 시리즈의 첫 순서로 큰바다쇠오리(학명 Pinguinus impennis)를 다루어 보려 합니다. 이 새가 어떤 모습으로 살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구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 정리했습니다.

    큰바다쇠오리
    큰바다쇠오리

    큰바다쇠오리는 어떤 동물이었는가

    구분 내용 (Details)
    학명 Pinguinus impennis
    체구 및 특징 몸길이 약 80cm, 체중 5kg 안팎 / 짧은 날개(비행 불가, 수중 수영 특화)
    주요 서식지 북대서양 및 북극해 일대 (뉴펀들랜드,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등)
    번식 특성 1년에 알 1개 산란 (낮은 번식력)
    멸종 시점 1844년 6월 3일 (아이슬란드 엘데이섬에서 마지막 개체 포획)

     

    큰바다쇠오리는 몸길이 약 80cm, 몸무게 5kg 안팎에 이르는 대형 바닷새였습니다. 머리부터 등까지는 윤기 나는 검은색 깃털로, 배 쪽은 흰색 깃털로 덮여 있었고, 부리와 눈 사이에 큰 흰 반점이 하나 있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날개는 길이가 20cm 정도로 매우 짧아서 하늘을 날 수 없었고, 땅 위에서는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마치 오늘날의 펭귄과 비슷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유럽인들이 이 새를 처음 보았을 때 붙인 이름이 '펭귄'이었고, 훗날 남반구에서 비슷하게 생긴 새들이 발견되면서 그 이름을 넘겨주고 큰바다쇠오리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서식지는 뉴펀들랜드에서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영국, 스칸디나비아 북쪽 해안에 이르는 북대서양과 북극해 일대였습니다. 물속에서는 날개를 이용해 헤엄치며 멸치나 오징어 같은 먹이를 사냥했고, 번식기가 되면 무리를 지어 바위섬에 모여 살았습니다. 다만 한 해에 알을 단 하나만 낳는 낮은 번식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점이 훗날 멸종 속도를 앞당기는 요인 중 하나가 됩니다.

    왜, 어떻게 멸종에 이르렀는가

    큰바다쇠오리 포획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습니다. 자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누이트를 비롯한 북극 원주민과 바이킹은 이미 8세기 무렵부터 이 새를 식량과 깃털, 기름의 원천으로 이용해 왔다고 합니다. 문제는 1534년 프랑스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의 탐험대가 뉴펀들랜드에 상륙한 이후였습니다. 이때부터 유럽의 뱃사람들이 대규모로 이 새를 사냥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장 식량으로 쓰기 위해 알과 고기를 소금에 절였고, 깃털은 베개나 이불 충전재로, 몸은 박제나 장식품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큰바다쇠오리에게 더 불리했던 점은 사람을 봐도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오는 습성이었습니다. 낯선 존재를 경계하기보다 가까이 다가오는 이 순한 성격이, 역설적으로 사냥을 훨씬 쉽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19세기 들어서는 표본 수집 열풍까지 더해지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결정타는 1830년, 큰 번식지였던 작은 섬이 화산 분화와 지진으로 바다에 가라앉은 사건이었습니다.

     

    이때 살아남은 약 50여 마리가 아이슬란드 근해의 엘데이섬으로 옮겨 갔지만, 희귀 표본을 원하는 수집가들의 표적이 되면서 그마저도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1844년 6월 3일, 엘데이섬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쌍이 포획되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했고, 이후 몇 차례의 목격담을 끝으로 큰바다쇠오리는 공식적으로 멸종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멸종이 남긴 흔적과 기록

    자료를 찾아보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큰바다쇠오리의 정확한 멸종 연도가 문헌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기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844년의 마지막 확인된 포획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후의 목격 보고까지 감안해 조금 더 뒤의 연도를 공식 멸종 시점으로 적어 둔 자료도 있었습니다. 이런 차이를 마주하면서, 한 종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이 사실은 명확한 하나의 날짜로 딱 떨어지기보다 여러 정황이 겹쳐 서서히 확정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 남아 있는 큰바다쇠오리의 박제 표본은 70여 점 정도로 알려져 있어, 멸종한 새 중에서도 상당히 희귀한 축에 속합니다. 아이슬란드 레이캬네스반도의 절벽 위에는 이 새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약 1.5m 높이의 청동상이 있는데, 멸종된 조류들을 추모하는 '잃어버린 새 프로젝트'의 하나로 조각가 토드 맥그레이가 제작한 작품입니다. 국내에서도 2016년 경북 상주의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에서 큰바다쇠오리를 포함한 멸종 조류 표본을 전시한 적이 있어, 직접 눈으로 확인할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청동상을 일정에 넣어 보는 것도, 멸종이라는 주제를 조금 더 가까이 느껴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남기는 의미

    큰바다쇠오리의 이야기는 이후 등장하는 도도새나 스텔러바다소 같은 다른 멸종동물의 사례와 여러모로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순한 성격, 낮은 번식력, 그리고 자원으로서의 경제적 가치가 겹쳐졌을 때 한 종이 얼마나 빠르게 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라는 점입니다. 화산 폭발이라는 자연재해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인간의 책임이 상대적으로 덜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개체수를 수백만 마리에서 수십 마리 수준까지 끌어내린 것은 수 세기에 걸친 인간의 사냥이었다는 점을 자료들은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멸종 사례를 살펴볼 때는 단순히 옛날이야기로 읽기보다, 지금도 비슷한 이유로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는 종들과 견주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관련 다큐멘터리나 박물관 자료를 함께 찾아보면 이해가 한결 깊어지는데, 국립생물자원관이나 지역 자연사박물관의 멸종 생물 전시 코너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큰바다쇠오리는 사라졌지만, 그 기록을 통해 지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생물들을 조금 더 주의 깊게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FAQs

    Q1. 큰바다쇠오리는 정확히 언제 멸종했나요?
    1844년 6월 3일, 아이슬란드 근해 엘데이섬에서 마지막 한 쌍이 포획되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후 몇 차례의 목격 보고까지 감안해 자료에 따라 1844년 또는 1852년을 공식 멸종 시점으로 다르게 표기하기도 합니다.

     

    Q2. 큰바다쇠오리는 왜 그렇게 쉽게 사냥당했나요?
    날지 못하는 대형 바닷새였던 데다, 사람을 봐도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오는 순한 습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한 해에 알을 하나만 낳는 낮은 번식력까지 더해지면서, 대규모 남획을 견뎌 낼 수 없었습니다.

     

    Q3. 큰바다쇠오리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나요?
    전 세계에 남아 있는 박제 표본은 70여 점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레이캬네스반도 절벽에는 이 새를 기리는 청동상이 세워져 있고, 국내에서도 2016년 경북 상주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에서 관련 표본이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 이 글은 여러 자연과학 자료를 참고하여 필자가 직접 재구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