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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동물 시리즈 4] 고원모아,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았던 뉴질랜드의 모아

📑 목차

    멸종동물 시리즈 네 번째 순서로 고원모아(Upland Moa, 학명 Megalapteryx didinus)를 다루어 보려 합니다. 모아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여러 종 가운데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종의 이야기입니다.

    고원모아
    고원모아

     

    고원모아는 어떤 동물이었는가

    구분 내용 (Details)
    학명 Megalapteryx didinus
    체구 및 특징 등 높이 1m 미만, 체중 17~34kg (발목까지 깃털이 덮인 고지대 적응형 모아)
    주요 서식지 뉴질랜드 남섬의 산악지대 및 아고산대 동굴 지역
    멸종 시점 약 1500년 무렵 (마오리족 정착 및 서식지 파괴/남획)
    주요 천적 하스트수리 (대형 맹금류, 모아 멸종 후 함께 절멸)
    특이사항 1878년/1980년대 동굴에서 피부·깃털·살이 남은 미라 표본 발굴

     

    모아는 뉴질랜드에만 살았던 날지 못하는 대형 조류로, 종에 따라 크기가 크게 달랐습니다. 그 가운데 고원모아는 상대적으로 작은 편에 속하는 종이었는데, 등 높이가 1m가 채 되지 않고 몸무게도 17~34kg 정도였다고 하니, 3.6m에 230kg까지 자랐다는 대형 모아 종들과 비교하면 훨씬 아담한 체구였던 셈입니다. 고원모아를 특히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은 깃털인데, 다른 모아 종들과 달리 부리와 발바닥을 제외한 몸 전체가 깃털로 덮여 있었고 발목 아래까지도 깃털이 나 있었습니다. 춥고 서늘한 고지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결과로 여겨집니다.

     

    이름 그대로 고원모아는 뉴질랜드 남섬의 산악지대와 아고산대에 주로 서식했습니다. 해발고도가 낮은 곳부터 해발 900m 안팎의 고지대 동굴 지역까지 폭넓게 발견되는데, 여름철에는 아고산대의 관목과 초본을 뜯어 먹고 겨울에는 더 낮은 지대의 숲으로 이동해 먹이를 구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번에 알을 한두 개만 낳는 낮은 번식력을 지녔고, 부화한 새끼는 다른 모아나 키위와 비슷하게 스스로 먹이를 찾아 나서야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왜, 어떻게 멸종에 이르렀는가

    뉴질랜드에는 원래 육상 포유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모아에게는 이렇다 할 천적이 없었습니다. 유일한 예외가 하스트수리라는 대형 맹금류였는데, 이 새조차 모아를 주식으로 삼아 번성했을 만큼 모아는 오랫동안 큰 위협 없이 살아온 종이었습니다. 이런 평화가 깨진 것은 13세기 후반, 마오리족이 뉴질랜드에 처음 정착하면서부터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집이 커서 한 마리로도 많은 식량을 얻을 수 있었던 모아는, 정착민들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사냥감이었습니다.

     

    산이 많고 인적이 드문 고지대에 살았던 고원모아는 저지대의 다른 모아 종들보다는 비교적 오래 버텼습니다. 평지에 살던 대형 모아 종들이 먼저 자취를 감춘 뒤에도 고원모아는 한동안 명맥을 이어갔는데, 그럼에도 결국 서식지 파괴와 지속적인 사냥을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고고학적 증거를 근거로 대체로 1500년 무렵을 고원모아의 공식적인 멸종 시점으로 보고 있으며, 모아를 먹이로 삼던 하스트수리 역시 주식이 사라지자 뒤이어 멸종의 길을 걸었습니다. 다만 산간 오지의 특성상 18~19세기까지 소수 개체가 남아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주장도 꾸준히 있어 왔지만, 이를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멸종이 남긴 흔적과 기록

    고원모아 자료를 살펴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 새의 실제 생김새가 뼈가 아니라 미라화된 표본을 통해 상당 부분 밝혀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878년 퀸스타운 인근 동굴에서 피부와 깃털이 그대로 남은 머리와 다리 표본이 발견되어 영국박물관으로 보내졌고, 이 표본이 지금의 고원모아라는 종을 처음 학계에 알리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오언산의 동굴에서 살이 그대로 붙어 있는 발 표본이 또 한 번 발견되었는데,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무려 3,300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건조하고 서늘한 동굴 환경이 아니었다면 남아 있기 어려웠을 기록입니다.

     

    최근에는 동굴에서 발견된 배설물 화석(코프롤라이트)을 분석해 고원모아가 실제로 무엇을 먹었는지 복원하는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뼈와 깃털만 남은 동물의 마지막 식사 내용까지 추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료를 찾아보는 내내 꽤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남기는 의미

    고원모아의 이야기는 앞서 다룬 큰바다쇠오리, 안경가마우지, 스텔러바다소와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럽인의 항해나 상업적 사냥이 아니라, 뉴질랜드에 처음 정착한 인간 집단과의 만남 자체가 멸종의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천적 없이 오랜 세월을 살아온 종이 새로운 포식자, 즉 인간을 만났을 때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뉴질랜드 자연사박물관이나 테 파파 통가레와 박물관의 모아 관련 전시 자료를 찾아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뼈대뿐 아니라 실제 깃털과 피부가 남은 미라 표본을 함께 살펴보면, 문헌 속 설명만으로는 잘 그려지지 않던 이 새의 모습이 한결 구체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FAQs

    Q1. 고원모아는 정확히 언제 멸종했나요?
    고고학적 증거를 근거로 대체로 1500년 무렵을 공식적인 멸종 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산간 오지에 서식했던 특성상 18~19세기까지 소수 개체가 남아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주장도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Q2. 고원모아와 다른 모아 종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깃털입니다. 다른 모아 종들과 달리 고원모아는 부리와 발바닥을 제외한 몸 전체가 깃털로 덮여 있었고, 발목 아래까지도 깃털이 나 있었습니다. 이는 고지대의 추운 환경에 적응한 결과로 여겨집니다. 몸집 역시 대형 모아 종에 비해 훨씬 작은 편이었습니다.

     

    Q3. 고원모아의 생김새는 어떻게 밝혀졌나요?
    1878년 퀸스타운 인근 동굴에서 피부와 깃털이 그대로 남은 미라화된 머리와 다리 표본이 발견되었고, 이 표본이 학계에 처음 알려지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후 1980년대 오언산 동굴에서도 3,300년 전의 것으로 확인된 발 표본이 추가로 발견되면서, 뼈만으로는 알기 어려웠던 실제 모습을 복원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이 글은 여러 자연과학 자료를 참고하여 필자가 직접 재구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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